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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 코메일 소헤일리(Komeil Soheili)는 그렇게 제보를 보내왔다. 메시지 속 그는 분명하고 단호했다. 그러나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예상과 달랐다. 유순한 인상에 부드러운 미소, 조용한 말투를 가진 사람이었다. 한국으로 귀화해 한국인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그는, 한국어도 가능했지만 "영어가 더 편하다"며 대화를 이어갔다. 소헤일리는 이란에서 오랫동안 민주화 인천출장샵운동에 참여해왔고, 현재는 한국에서 영화를 가르치며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란을 다룬 작품뿐 아니라, 소성리 사드(THAAD)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삶을 담은 <잊혀진 마을>,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의 생태 파괴 문제를 다룬 <종이 울리는 순간> 등 한국 사회의 민감한 정치·사회적 현장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우리가 만난 날은 마침 이란에서 대규모 시위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그의 눈은 유난히 촉촉해 보였다. 한동안 시선을 맞추기 어려웠다. 계속 바라보다가는 나 역시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남 이후인 1월 29일, 서면으로 추가 질의 응답을 받았다. - 이란을 떠난 한국에 사는 이유는? "저는 이란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저는 이란 '밖'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느꼈고, 그래서 지난해 다시 이란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극적인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항상 이란에서 살고, 이란에서 죽을 것이라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이란으로 돌아가 몇 달을 살았습니다. 다만 여러 사정,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에서의 일자리 제안 때문에 다시 한국에 머물기로 결정했고, 대신 이란을 자주 오가며 지낼 계획입니다." - 이란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는? "이란에서 사는 것은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영화감독으로서 저는 이란에서 영화를 만들 때 더 책임감을 느끼고, 더 자유롭삼척출장샵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 년간 이란을 여행하고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란은 결코 살기 쉬운 곳이 아닙니다. 이란의 정치 체제는 자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반복해서 잘못된 선택을 해왔고, 국가와 시민 사이의 간극은 단기 방문자조차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제재, 부패, 구조적 문제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체류하던 기간 중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실제 혼란 상태가 됐고, 저는 한국 정부가 마련한 계획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이란을 떠나야 했습니다. 원래는 임시 체류였지만, 한국에서의 대학 강의와 영화 상영 기회가 생기면서 당분간 한국에 머물기로 했고, 이란은 계속 오갈 생각입니다." - 귀화를 하게 된 결심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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